언어가 바꾸는 사고방식 – 영어·일본어·아랍어 시제 비교
1. 언어는 ‘세상을 보는 렌즈’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이를 ‘언어상대성 가설(linguistic relativity)’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영어 화자, 일본어 화자, 아랍어 화자가 묘사하는 방식은 꽤 다릅니다. 이는 단순히 단어 차이가 아니라, **시제(tenses)**와 문법 구조가 사고를 조직하는 틀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2. 영어 – ‘시간의 흐름’을 선명히 그린다
영어는 시제 구분이 매우 세밀합니다. 과거(past), 현재(present), **미래(future)**뿐 아니라, 진행(progressive)·완료(perfect)·완료진행(perfect progressive) 등 시간축에서 사건의 위치와 지속성을 아주 명확히 표시합니다.
-
예: I have lived here for five years. (현재완료: 지금까지 계속 살고 있음)
-
예: I was reading when you called. (과거진행: 전화가 왔을 때 읽고 있는 중이었음)
영어 화자는 과거·현재·미래를 뚜렷이 구분하고, 말할 때마다 시간 정보를 거의 필수적으로 제공합니다. 이런 구조는 **‘시간을 선형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강화합니다.
3. 일본어 – ‘상황과 관계’를 중심에 둔다
일본어 시제는 크게 **과거(〜た)**와 비과거(〜る) 두 가지로 나뉘며, 비과거형이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明日行く”는 “내일 간다”지만, 시제만으로는 ‘확정된 미래’인지 ‘계획 중’인지 모호합니다.
-
예: 明日行くよ。(あした いく よ / Ashita iku yo) – 내일 가.
-
예: 明日行ったよ。(あした いった よ / Ashita itta yo) – 어제 간 것처럼 과거형 사용.
대신 일본어 화자는 맥락, 화자의 의도, 듣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보완합니다. 즉, 시간보다 대인관계와 상황 조율이 우선입니다. 이는 일본 사회의 **‘조화와 암묵적 이해’**라는 문화적 가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4. 아랍어 – ‘완료 vs 미완료’로 보는 세계
아랍어 시제 체계는 영어·일본어와 다르게 **완료(perfect)**와 **미완료(imperfect)**로 나뉩니다. 시간보다 행동이 끝났는가, 진행 중인가가 핵심입니다.
예: كتبَ (kataba) – 썼다(완료), يكتبُ (yaktubu) – 쓰고 있다/쓸 것이다(미완료)
미완료형은 문맥에 따라 현재·미래 모두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
هو يكتب الآن (huwa yaktubu al-ān) – 그는 지금 쓰고 있다.
-
هو يكتب غدًا (huwa yaktubu ghadan) – 그는 내일 쓸 것이다.
아랍어 화자는 사건의 ‘시간’보다 ‘완결 여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결과 중심적 사고가 발달합니다.
5. 시제가 만드는 사고의 차이
-
영어: 시간 순서와 지속성에 민감 → “언제 일어났는가?”를 우선 생각
-
일본어: 관계와 맥락에 의존 →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말하는가?”가 중요
-
아랍어: 결과와 완결성에 집중 → “행동이 끝났는가, 아직 진행 중인가?”가 핵심
같은 ‘내일 여행 간다’는 말도,
-
영어: I will go on a trip tomorrow. (시간 강조)
-
일본어: 明日旅行する (계획+맥락)
-
아랍어: سأذهب غدًا (sa’adhhabu ghadan, 미래 미완료형) – 계획보다 ‘아직 안 간 상태’ 강조
6. 마무리 – 언어 공부의 숨은 즐거움
시제 비교를 하다 보면, 단순한 문법 공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보입니다. 앞으로 외국어를 배울 때는, “이 문법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그 순간, 언어는 ‘시험 과목’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보는 창문’이 됩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