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와 철학 – ‘존재’를 말하는 다양한 방식

8월 26, 2025

1. 철학과 언어의 끈끈한 관계

철학은 존재·인식·가치 같은 추상적 문제를 다룹니다. 그런데 이 모든 논의는 결국 언어라는 매개로 표현됩니다. 철학자들이 단어 하나를 두고 수백 년간 논쟁을 이어온 이유는, 단어의 의미가 곧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존재한다”라는 개념은 언어마다 표현 방식이 달라, 철학적 논의에도 큰 차이를 만들어 왔습니다.

2. 영어의 ‘to be’와 존재

영어에서 “존재하다”라는 개념은 대부분 to be 동사로 표현됩니다. “I am”, “It is”, “There is” 같은 문장은 단순하지만, 철학적으로는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제공합니다. 서양 철학에서 존재론(Ontology)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to be 동사가 문법 구조 속에 중심적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3. 한국어의 ‘있다’와 ‘이다’

한국어는 존재를 표현할 때 ‘있다’와 ‘이다’를 구분합니다. “책이 있다”와 “그는 학생이다”는 영어로 모두 is로 번역되지만, 한국어에서는 명확히 다른 구조입니다.

있다: 사물의 위치·존재
이다: 정체성·속성

이 차이는 단순히 문법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존재 그 자체’와 ‘존재의 성질’—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4. 일본어의 ‘いる’와 ‘ある’

일본어에는 존재를 표현하는 두 가지 동사가 있습니다.

いる: 살아 있는 존재(사람·동물)
ある: 무생물

“犬がいる(개가 있다)”와 “机がある(책상이 있다)”의 구분은, 일본인의 세계관 속에서 ‘생명’과 ‘비생명’을 언어적으로 항상 구분하도록 만듭니다. 이 구조는 철학적 사유에도 영향을 주어, 존재론을 논할 때 생명 중심적 관점이 더 쉽게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5. 불어와 독일어의 존재 개념

프랑스어에서는 être가 ‘존재하다’, ‘~이다’를 모두 포괄합니다. 반면 독일어에서는 sein이 영어의 be와 비슷하지만,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들은 이 동사에서 출발해 “존재(Sein)”와 “존재자(Seiendes)”의 구분을 철학적으로 정립했습니다. 언어 속 단어 하나가 세계 철학사에 거대한 사유 체계를 낳은 셈입니다.

6. 언어와 철학적 논쟁의 뿌리

철학자들은 언어가 세계를 구성한다고 보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하이데거: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공자와 주역: 이름(名)을 바르게 하는 ‘정명론’은 언어가 사회 질서를 규정한다고 봄.

즉, 존재를 말하는 방식은 곧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과 직결됩니다.

7. 번역의 한계와 철학 이해

서양 철학서를 한국어로 읽을 때, being을 ‘존재’로 번역할지 ‘있음’으로 번역할지는 큰 차이를 만듭니다. 하이데거의 Dasein을 ‘현존재’라고 옮길지 ‘여기-있음’이라고 옮길지는 해석에 따라 철학적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는 언어가 철학 이해를 얼마나 크게 좌우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8. 언어 학습자의 철학적 확장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언어적 구조를 접하는 것뿐 아니라, 존재를 말하는 새로운 틀을 배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어 학습자가 일본어의 ‘いる/ある’를 배우면 생명과 무생물을 나누어 생각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영어 학습자가 to be 동사를 배우면 존재와 정체성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언어 학습이 아니라 사유 방식의 확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오늘의 정리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은 언어마다 다르다.
영어는 be, 한국어는 ‘있다/이다’, 일본어는 ‘いる/ある’로 세계를 나눈다.
철학적 논쟁은 결국 언어적 구조에서 출발한다.
외국어 학습은 새로운 철학적 틀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10. 마무리 – 언어는 존재의 창

존재를 말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존재를 바라보는 철학도 달라집니다.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틀입니다. 우리가 여러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곧 여러 철학적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블로그 검색

외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