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계급 – 말투와 억양에 숨어 있는 사회적 신분

 

1. 같은 언어, 다른 목소리

한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발음·억양·단어 선택은 사회적 배경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말투만으로 상대의 학력, 직업, 계급을 추측합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2. 영국 – 억양이 신분을 가른다

영국 사회에서는 억양이 계급을 가르는 대표적인 요소입니다.

  • RP(Received Pronunciation): 이른바 ‘BBC 영어’라 불리며, 상류층과 명문대 출신이 주로 사용. 표준 발음으로 간주되어 취업 면접이나 방송에서 선호됩니다.

  • Cockney 억양: 런던 노동자 계급의 전통적 억양. 영화 속 범죄자 캐릭터에 자주 등장하며, 오랫동안 낮은 계급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 Scouse·Geordie: 리버풀, 뉴캐슬 등 지역 억양은 독특하지만, 중앙 무대에서는 때때로 불이익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억양만으로도 상대의 출신 학교와 계급을 추측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억양은 곧 사회적 신분증 역할을 했습니다.


3. 프랑스 – 단어 선택과 발음의 미묘한 차이

프랑스에서는 억양보다는 단어 선택과 발음이 계급을 드러냅니다. 파리 상류층은 세련된 표준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반면, 지방 사투리나 억양은 ‘시골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20세기 초반까지는 파리식 발음이 곧 지식인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경향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직장에서의 언어 사용은 곧 사회적 위치와 직결됩니다.


4. 일본 – 존경어와 겸양어의 세계

일본어는 문법 체계 자체가 사회적 위계를 반영합니다.

  • 존경어(尊敬語): 윗사람을 높이는 표현.

  • 겸양어(謙譲語): 자신을 낮추어 말하는 표현.

  • 정중어(丁寧語): 일상적 공손 표현.

예를 들어, “하다”라는 말도 상대에 따라 shimasu(します), nasaimasu(なさいます), itasu(いたします)로 달라집니다. 이처럼 일본어는 대화 상대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정도로, 계급과 예절이 언어 속에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5. 한국 – 표준어와 사투리, 존댓말과 반말

한국에서도 언어는 계급과 사회적 위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였습니다.

  • 과거에는 양반 언어상민 언어의 차이가 문학 작품에도 기록돼 있습니다.

  • 현대에는 표준어가 공적인 자리에서 권위 있는 언어로 사용되고, 사투리는 친근하면서도 때때로 사회적 불이익을 주기도 합니다.

  • 존댓말과 반말 체계는 나이, 직장 내 서열, 사회적 지위를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가 신입에게 반말을 쓰지만, 신입은 존댓말을 쓰는 상황은 한국 사회의 위계 구조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6. 언어 차별과 사회 불평등

억양과 말투가 신분을 드러내다 보니, 때때로 언어는 차별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 영국에서는 ‘Cockney 억양’을 쓰면 상류 사회 진입이 어려웠다는 사례.

  • 한국에서는 특정 사투리를 쓰면 면접에서 불이익을 보는 경우.

  • 일본에서는 존경어·겸양어 실수가 사회적 결례로 간주되는 경우.

이처럼 언어 사용 능력은 단순한 ‘말하기’가 아니라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합니다.


7. 오늘의 교훈

외국어를 배울 때 단순히 문법과 단어를 넘어, 그 언어가 가진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언어라도 억양과 말투, 존칭법이 계급·신분·문화적 태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 영어를 배울 때 Cockney 억양과 RP 억양을 모두 이해하면, 언어 너머에 있는 사회 계층의 미묘한 관계까지 볼 수 있습니다.


8. 마무리 – 언어는 사회의 거울

언어는 언제나 그 사회의 구조를 반영합니다. 계급이 뚜렷했던 사회일수록 언어는 그 구분을 명확히 했고, 오늘날에도 그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언어 속 억양, 존댓말, 단어 선택은 단순한 말투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그림자입니다. 외국어를 배우며 이 점을 의식한다면, 더 깊이 있고 풍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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