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격식 표현의 세계사 – 프랑스어 vous, 일본어 keigo, 한국어 높임말

 

1. 말 한마디에 담긴 ‘위계’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특히 존댓말·격식 표현은 사회의 위계, 친밀도, 예의 범절을 반영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표현이 존재하지만, 그 뿌리와 쓰임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2. 프랑스어 vous – 단수에서 복수, 복수에서 존칭

프랑스어에는 **tu(너)**와 **vous(당신, 여러분)**가 있습니다. 원래 vous는 복수형이었지만, 중세 이후 사회 계층이 뚜렷해지면서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복수형을 쓰는 것이 예의로 굳어졌습니다.

  • 예: Tu es mon ami. (넌 내 친구야 – 친밀)

  • 예: Vous êtes mon ami. (당신은 제 친구입니다 – 존칭 또는 복수)

흥미로운 건, vous를 쓰는 순간 화자와 청자 사이에 **‘거리를 두는 존중’**이 형성된다는 점입니다. 현대 프랑스에서도 처음 만난 사람이나 공식 석상에서는 vous를 쓰고, 친해지면 tu로 바꾸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 전환 과정은 관계 발전의 중요한 신호입니다.


3. 일본어 keigo – 존경어, 겸양어, 정중어의 복잡한 체계

일본어의 경어(敬語) 체계는 세계적으로도 정교하기로 유명합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 존경어(尊敬語): 상대방의 행위를 높임 – 行く → いらっしゃる

  • 겸양어(謙譲語): 자신의 행위를 낮춤 – 行く → 参る

  • 정중어(丁寧語): 문장을 정중하게 만듦 – 行く → 行きます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에게 “갑니다”라고 말할 때는 **参ります(갑니다 – 겸양어)**를 쓰고, 상사가 간다고 말할 때는 **いらっしゃいます(가십니다 – 존경어)**를 씁니다. 이 구조는 일본 사회의 수직적 조직문화와 예의 범절이 언어에 녹아 있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4. 한국어 높임말 – 주체·객체·상대 모두 높인다

한국어의 높임말은 주어(주체), 목적어(객체), 듣는 사람(상대)에 따라 세심하게 조절됩니다.

  • 주체 높임: “할아버지께서 진지를 드십니다.” (‘드시다’ → 주체 높임)

  • 객체 높임: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모시다’ → 객체 높임)

  • 상대 높임: “갑니다 / 갑니다요 / 갑니다만”처럼 종결어미로 조절

특히 한국어의 종결어미 변화는 미묘한 심리와 관계 변화를 드러냅니다. 같은 ‘먹었다’도 “먹었어요”(반말+존대), “드셨습니다”(격식+높임), “드셨어요”(친근+높임)처럼 뉘앙스가 다양합니다.


5. 존칭 표현이 보여주는 사회 구조

  • 프랑스어: 거리와 예의를 통한 관계 설정 – 수평적이지만 ‘관계 초기’에 거리 유지

  • 일본어: 역할·지위에 따른 언어 의무 – 사회적 질서 유지 장치

  • 한국어: 친밀도·위계·상황에 따른 다층적 높임 – 미묘한 감정 표현 가능

이 차이는 역사적 배경과도 연결됩니다. 프랑스의 vous는 봉건제와 귀족 문화에서, 일본의 keigo는 무사계급 사회에서, 한국어 높임말은 유교적 질서와 가족 중심 문화에서 발전했습니다.


6. 마무리 – 존중의 언어, 경직의 언어

존칭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수단이지만, 과도하게 경직되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현대에는 SNS·메신저의 영향으로 많은 언어에서 격식이 완화되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각 언어가 가진 존칭 체계는 그 사회의 역사와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외국어 학습자가 그 언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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